[추창근 칼럼] 일본 核 이미 현실이다
20여년 전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둘러보았을 때의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미군 B29 폭격기가 1945년 8월6일 아침 이곳에 무게 4짜리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떨어뜨린 다음 상황은 지옥이었다. 섭씨 3000도를 넘는 고열과 후폭풍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고 20만명이 살상당했다. 처참했던 흔적과 기록들을 끌어모아 재현해 놓은 당시의 참상은 확실히 핵무기의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파멸을 자초한 태평양전쟁 전범국(戰犯國)으로서의 반성과 책임의식 따위는 없었다. 침략과 숱한 만행으로 한국과 중국, 많은 동남아 국가들에 극심한 고통을 준 가해행위도 감추고 있었다. 평화와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피해만 부각시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느낌, 평화기념관에서의 불편함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일본이 결국 핵무장의 둑을 허물었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천명한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非核) 3원칙의 가림막을 쳐놓고 뒤에서 끊임없이 핵능력을 키워왔던 일본은 최근 원자력기본법을 34년 만에 개정하면서 ‘안전보장’을 목적조항에 명시했다. 핵에 대한 금기(禁忌)를 스스로 깨고 핵무장의 근거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후쿠시마 사고에 데인 이후 탈(脫)원전을 선언해놓고는 기존 원자로보다 훨씬 위험한 고속증식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계속 확보하겠다는 속셈이다.

일본의 핵은 이미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핵무장을 향해 달려왔고 이제 마음만 먹으면 1~3개월 내에 핵무기를 만들어 낼 만큼 완벽한 기술적 능력을 가진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겉으로 비핵 3원칙을 내세웠던 사토 총리가 실제로는 비밀리에 핵무장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1980년대 5년 동안 총리로 장기 재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핵보유를 숙원으로 삼았다. 그는 미국과의 집요한 협상 끝에 1987년 우라늄 농축,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생산의 자율적인 권한을 얻어냄으로써 핵무장의 디딤돌을 굳혔다. 그때부터 쌓아온 플루토늄이 핵탄두 수천개를 만들 수 있는 30이다.

‘평화적 이용’을 내세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우주개발 역사 또한 핵탄두와 미사일을 쉽게 결합해 원하는 곳까지 실어나를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륙간 탄도탄 기술을 축적한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미 1970년 인공위성 자력(自力)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독자 개발한 H시리즈 로켓은 그동안 수십 차례의 발사에서 성공률이 90%를 넘고, 지금은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을 대신 발사해주는 상업용으로 활용되는 단계다. M-V 고체연료 로켓은 당장이라도 대륙간 탄도탄을 대신할 수 있다.

고속증식로에 대한 그들의 집착도 그렇다. 고속증식로는 원전에서 핵연료를 태울 때 쓸모없는 우라늄238을 핵분열이 가능한 플루토늄239로 바뀌게 함으로써 투입량보다 더 많은 연료가 생성되는 ‘꿈의 원자로’다. 무엇보다 여기서 나오는 플루토늄은 곧바로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을 만큼 순도가 높다. 하지만 냉각재인 나트륨의 폭발 위험이 너무 크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치명적인 재앙이 우려되는 등 안전성에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때문에 과거 고속증식로 개발에 적극 나섰던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이 이제는 사실상 손을 뗀 상태인데 일본만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플루토늄과 연결짓지 않고는 그 이유를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의 동북아 안보 구도에 어떤 변화가 온다면 일본이 핵보유를 공식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공공연하게 핵무장을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들 또한 부지기수다. 핑계는 중국의 끊임없는 팽창전략과 이미 저지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기정사실화된 북한 핵이다.

핵 강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에 더해 북한과 일본의 핵보유는 대한민국을 핵무기가 둘러싸는 불행하고도 엄중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들 어느 한 곳이라도 빼놓고 안보를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주변국 모두의 핵에 우리 안보가 갇히고 있는 것이다. 무력하게도 우리에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국가안전을 스스로 지킬 것이며, 안보전략으로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추창근 <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 >